중앙일보

 

[배양숙의 Q] 두 다리 없는 아들 ‘철인’으로 키운 엄마 “난 여전히 부족”

[중앙일보] 입력 2017.10.21 04:00   수정 2017.10.21 10:03

배양숙의 Q
- 9살에 5Km 달리기 완주, 해발 3870m 로키산맥 등정 
- 2011년 뉴욕 허드슨 강에서 열린 10Km 장거리 수영 18세 미만 1위- 2015년 유니버시아드 대회 10Km 수영 국가대표 선발전 2위올해 21살인 수영선수 김세진의 기록들이다. 김세진 선수는 선천성 무형성장애로 두 다리와 오른손이 없다. 하지만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으로 비장애인 대회에도 당당히 맞섰다. 그리고 그 뒤에는 항상 그를 지원해주는 어머니, 양정숙씨가 있었다. 양정숙씨는 어렸던 세진군을 끊임없이 넘어뜨리며 일어서는 법을 가르쳤고, 살아가면서 당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부당한 상황들을 시뮬레이션하며 키웠다. 그 결과 세진군은 누구보다 강하고 당당한 수영선수로 자랐다. 가슴으로 낳은 아들, 세진이를 키우기 위해 여자가 아닌 엄마로 살아내야 했던 양정숙씨. 그럼에도 아직도 자신을 ‘나쁘고 부족한 엄마’라고 말하는 그를 ‘배양숙의 Q’가 만났다. 

로봇다리 세진이를 가슴으로 낳아 키운 어머니 양정숙씨
20살부터 독립해 자판기 사업을 할 정도로 남달라
세진이를 키우며 시행착오 많았고 아직도 부족한 엄마다
우리사회에서 장애아동을 키우려면 비교하지 말아야 해

  
배양숙의 Q가 파주 출판단지에서 로봇다리 세진이의 어머니, 양정숙씨를 만났다. 오종택 기자

배양숙의 Q가 파주 출판단지에서 로봇다리 세진이의 어머니, 양정숙씨를 만났다. 오종택 기자

  
질의 :요즘 세진군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응답 :“지금 잠시 학업과 수영을 멈추고 쉬고 있어요. 그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 위해 학교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세진이는 대학원에서 재활·심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해요. 구체적으로는 마이너로 떨어진 선수들을 다시 메이저로 끌어올리는 일이죠. 대학원 졸업 후에는 UN에서 공공외교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하고 IOC 위원이 되는 것이 꿈이에요. 그러기 위해선 미국 대학에서 공부해야겠죠.”
질의 :세진군은 대학교에서 학점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똑똑하다고 들었습니다. 22개월 때 벌써 ‘엄마는 나무지요. 나는 새지요. 그래서 내가 엄마 가슴에 집을 지었지요.’ 라는 말을 했다고요.
응답 :“세진이는 어렸을 때부터 말을 잘했어요. 그 말을 하고 몇 년이 지나 장애아동 봉사활동을 하러 갔는데 한 아이가 세진이한테 고향이 어디냐고 묻더군요. 그때가 추석이었거든요. 세진이가 대답했어요. ‘나는 우리엄마 가슴이 고향이야.’ 그 아이가 또 물어요. ‘그럼 내 고향은?’ 그랬더니 세진이가 그 아이의 손을 잡으며 ‘그럼 너도 나랑 같이 우리 엄마 가슴으로 하자.’라고 말하더군요.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요. 후에 그 아이는 두 번이나 파양 당했어요. 지금은 어느 목사님 가정에서 잘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세진군은 선천성 무형성장애로 어린 나이에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사진 양정숙]

세진군은 선천성 무형성장애로 어린 나이에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사진 양정숙]

  
질의 :그렇게 어른스러운 세진군도 사춘기를 겪었나요?
응답 :“그럼요. 아주 심하게 겪었죠.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겠다고 한적도 있어요. 그 때 제가 세진이한테 물어봤어요. ‘너 지금 죽고 싶어, 아니면 죽을 만큼 힘들어?’ 죽을 만큼 힘들대요. 또 물었어요. ‘그럼 지금 네 얘기를 누가 들어줬으면 좋겠어, 아니면 아무한테도 얘기하기 싫어?’ 들어줬으면 좋겠대요. ‘그럼 내려와.’ 제 아들을 식탁에 앉혀놓고 소주를 꺼내왔어요. 세진이한테 소주를 한잔 주며 말했어요. ‘소주 딱 한잔만 마시고 남자답게 털어놔봐.’ 그랬더니 다 얘기하더라고요. 런던 올림픽에 출전해 최연소 타이틀을 달고 싶었던 것, 그 꿈이 좌절된 것, 그로 인해 믿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린 것 까지요.”
질의 :세진군이 초등학생 때 학교폭력을 당한 적도 있다고요.
응답 :“하루는 세진이가 피를 흘리면서 집에 왔어요. 형들이 화장실에서 망치로 다리를 때렸대요. 순간 세진이를 때린 아이들한테도 화가 났지만, 학교 가는 길에 장사하는 사람들한테도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세진이가 피 흘리면서 기어오는 걸 다 봤을 텐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게 괘씸했어요. 그렇게 신발도 제대로 못 신고 길거리 상인들한테 소리지르면서 학교에 도착했어요. 아이들을 보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한 템포 쉬고 생각했어요. ‘하느님. 제가 지금 저 아이들을 때릴 수 있는데, 제가 그러면 평생 저 아이들이 제 아이를 때리겠죠?’ 그렇게 아이들을 불러 말을 걸었어요. ‘너희 너무 재미있게 노는데 불러서 미안해. 아줌마가 부러워서 그래. 나도 아들이 있는데 그렇게 못 놀거든.’ 아이들한테 빵과 음료수를 사주고 계속 얘기했어요. ‘아줌마는 아까부터 여기 있었고, 너희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걸 봤어.’ 두 아이는 고개를 떨궜고 한 아이는 뻔뻔하게 말했어요. ‘걔는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잖아요. 걔는 맞아도 안 아파요.’ 그 말을 듣고 저는 그 아이의 얼굴 앞에 물방울이 튀도록 물잔을 갖다 댔어요. 그랬더니 아이가 ‘아줌마 저한테 왜 이러세요? 빵 사주고 할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전 이렇게 말했죠. ‘놀랬어? 물방울이 튈 줄 몰랐어. 근데 걔도 놀라지 않았을까? 걔가 로봇다리라서 아프지는 않을지 몰라도 놀라지 않았을까? 사실은 내가 그 아이의 엄마야.’ 그 얘기를 듣고 두 아이는 눈물을 흘리는데 한 아이는 끝까지 반성하지 않더라고요. 망치는 어디서 났냐고 물으니 과학시간에 쓰던 플라스틱 교구였고, 그게 깨지면서 세진이 피부가 찢어진 거였어요. ‘내일 아침까지 사과하면 세진이도 너희를 미워하지 않을 거고 너희도 세진이를 보기에 불편하지 않을 거야. 아줌마는 너희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몰라서 그랬다고 생각하지.’ 그렇게 아이들은 화해시켰는데 어머니들은 어디서 남의 집 귀한 아들을 훈계하냐고 말씀하시더군요.”
질의 :세진군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계기가 뭔가요?
응답 :“저희는 방송이 인연이 되어서 알고 지내던 배우 차인표·신애라씨 부부랑 친하게 지내요. 2013년도에 인표씨가 SBS 예능 ‘땡큐’라는 프로그램을 했는데 한 번 세진이를 초대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서 막 이야기하니까, 세진이도 자기가 무언가를 이야기해야 하는 줄 알았나 봐요. 사실 저는 세진이 이야기가 방송에 나가지 않길 바랐어요. 고아, 시설, 버려졌다는 등 쓰지 말아야 하는 단어들이 있거든요. 제작진이 저를 설득하기 위해 세진이가 나온 부분을 편집한 영상을 보여줬는데, 제가 봐도 눈물이 나더군요. 그 영상이 시청자들에게 큰 반응을 이끌어냈어요. 그 뒤로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도 출연하며 세진이의 이야기가 알려지게 됐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시에서 강연하고 있는 김세진. [사진 세바시]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시에서 강연하고 있는 김세진. [사진 세바시]

  
질의 :한 수영대회에서 펜으로 그린 태극기를 들고 직접 애국가를 불러주셨지요?
응답 :“사실 매번 외국경기 때마다 제가 애국가를 불러줍니다. 그날은 특별히 제가 마이크를 들고 불러줬을 뿐이지요. 그때가 독일에서 개최된 세계 장애인 선수권 대회였어요. 그 시합에서 세진이가 금메달 3개, 은메달 4개를 땄습니다. 세진이의 양쪽에는 일본 선수와 독일 선수가 있었고 각 나라의 국기가 올라갔는데 우리나라 국기만 없더군요. 애국가마저 울리지 않았습니다. 사회자한테 물어봤더니 ‘코리아라고만 써서 북한인지 남한인지 몰랐고, 한국이라는 조그만 나라에서 엄마와 아이 단 둘이 나와 이렇게 메달을 딸 줄 몰라서 미처 준비하지 못했습니다.’라는 대답만 돌아왔어요. 세진이는 자기 이름이 적혀있는 종이 뒷면에 볼펜으로 태극기를 그렸고, 경기장을 모두 떠나고 있는 상황에서 저는 사회자 마이크를 뺏어 큰 목소리로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많은 사람들이 되돌아와서 기립 박수를 쳐줬어요. 그날 이후로 저희는 태극기 모자로 유명해졌습니다.”
질의 :세진군의 이야기도 감동적이지만, 양선생님의 어릴 적 이야기도 무척 궁금합니다.
응답 :“제 어머니는 노산으로 돌아가셔서 저는 유모의 손에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한약 유통업을 하셨고, 재벌은 아니었지만 현금은 많았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재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저를 키워야 하기 때문이었어요. 아버지는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이 저희 어머니를 사랑한 것 그리고 저를 낳은 것이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저를 많이 예뻐하셨어요.”
질의 :그런 아버지께서 양선생님을 20살에 독립시키고 재산도 물려주지 않으셨다고요.
응답 :“아버지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셨습니다. 제게 재산을 물려주셨으면 저는 돈을 똥같이 생각하고 굉장히 교만하게 살았을 거예요. 사실 제가 어렸을 때 공부도 못하고 좀 놀았거든요. 그랬더니 아버지가 재산을 빨리 정리하시더라고요. (웃음) 20살에 독립하는 건 아버지랑 약속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진짜 내보내시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죠. 제가 20살이 되던 날, 비가 부슬부슬 왔어요. 저는 쫓겨날까 무서워서 아픈척하고 휠체어를 타고 있었어요. 그랬더니 아버지가 저를 휠체어를 탄 채로 내보내시더라고요. 처음엔 너무 어이없고 기가 막혀서 눈물도 안 났어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아버지랑 타협하기로 했어요. 먼저 가져가야 할 물건들이 있다면서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은 채로 월세 10만원씩 낼 테니 집에서 살게 해달라고 했어요. 지금 당장 낼 돈이 없으니 일단 아버지께 50만원을 빌렸어요. 그 돈으로 커피 자판기를 사 건설현장 근처에 있는 밥집에 놔뒀습니다.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커피를 가장 많이 마시거든요. 그걸로 돈을 많이 벌었죠. 그렇게 대학에 들어가서는 축제 때 소주 한 박스 사는 조건으로 학교에 자판기를 설치했어요. 그 뒤로도 라면 자판기, 콜라 자판기 등 많은 사업을 했어요. 학교에 천막을 치고 테이블, 의자 그리고 자판기를 설치해 코인하우스도 만들었고요. 그렇게 사업이 승승장구 하던 중 자판기에 바퀴벌레가 있다는 뉴스가 나왔어요. 제 사업은 망할 위기해 처했죠. 그래서 저는 자판기에 투명 아크릴을 끼워 내부가 보이도록 했어요. 그리고 요즘 정수기처럼 청소한 날짜를 종이에 기록해 붙였어요. 제 사업은 다시 흥했고, 그렇게 번 돈으로 야학을 세워 장애인분들을 외출을 돕는 일과 공부를 하는 일을 함께 했어요.”
  
양정숙씨는 젊은 나이에 독립해 사업을 일으킬 정도로 비범했다. 오종택 기자

양정숙씨는 젊은 나이에 독립해 사업을 일으킬 정도로 비범했다. 오종택 기자

  
질의 :젊은 나이에 번 돈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응답 :“저희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제게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봉사를 시키셨어요. 경로당 할머니들께 안마 해드리거나 노래도 불러드리거나 했죠. 또 넝마주이 아저씨들께 밥을 차려드리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새치기를 해서 들어오는 분께는 밥을 드리지 않았고, 돌이라도 하나 치우시는 분께는 일자리를 드렸어요. 하지만 이런 아버지도 사람인지라 삶 전체가 훌륭한 건 아닙니다. 그래도 저는 아버지의 훌륭하셨던 부분을 전체 이상으로 생각하려고 해요. 굳이 안 좋은 모습까지 기억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질의 :세진이를 입양했을 때 아버지는 뭐라고 말씀하시던가요?
응답 :“아버지께서 꼭 이렇게 살아야만 하냐고 많이 우셨어요. 이 땅에 장애인으로 사는 것이 어떤 건지 알고 있냐고, 네가 저 아이의 엄마로 산다는 것이 네 눈 찌르는 일이고 네 무덤 파는 일인데, 그래도 그렇게 하겠느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리고 정녕 네가 저 아이의 엄마로 살겠거든 세가지 약속을 하라고 말씀하셨어요.
첫째, 네가 엄마로 살려면 누구 앞에서도 여자가 되려고 하지 마라.
둘째, 세상에 맞서지 마라. 세상은 싸워서 이길 수 없다 그저 용서만이 상생이며 살길이다.
셋째, 좋아도 참아라. 좋다고 날뛰고, 싫다고 머리 박고 다니지 말라는 뜻이다. 자식이 너를 보고 무엇을 배울지 생각하고 너의 언행을 조심해라.”
질의 :세진군에게 동생 두 명이 더 생겼다고요.
응답 :“입양한 건 아니고 결연가족을 맺었습니다. 저는 한 부모고 재산이나 일정한 수익이 없기 때문이죠. 그 아이들은 월요일부터 목요일은 시설에서 보내고 금요일부터 일요일은 저희 가족이랑 지내요. 모든 시설 사람들은 저희가 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법적으로 같이 살수가 없어요. 제가 무리를 해서 이 아이들을 데려오면 좋지 않은 전례가 돼서 합당하지 않은 가정에 다른 아이들이 가게 될 까봐 결연가족으로만 지내고 있어요. 제 마음만 엄마이면 되는 거예요.”
질의 :세진군 때문에 온 가족이 집에서 기어 다닌다고 들었습니다.
응답 :“세진이를 내려다보고 싶지 않았고 세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실 먼저 기어 다니기 시작한 건 세진이의 큰 누나, 제 큰 딸이에요. 큰 딸은 세진이 일이라 그러면 뭐든지 다 챙겨요. 핸드폰에도 ‘★내새끼★’라고 저장해놨고요. 세진이는 저를 나의 태양, 큰 누나를 나의 달이라고 해요. 그만큼 큰 누나는 세진이에게 소중한 존재죠. 큰 딸의 사위가 결혼하는 조건이 세진이와 같이 목욕탕을 가는 거였어요. 세진이한테 아빠가 없으니까 남자 목욕탕을 한번도 못 가본 게 속상했나 봐요. 세진이가 평범하게 살길 바랬던 거죠. 저희 집에 인사하러 양복 차려 입고 왔는데 갑자기 목욕탕을 가라니,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하지만 제 사위는 군말하지 않고 갔어요. 참 착하고 좋은 사람이죠.”
  
김세진(오른쪽)과 그의 큰 누나. [사진 양정숙]

김세진(오른쪽)과 그의 큰 누나. [사진 양정숙]

  
질의 :양정숙씨는 독하고 나쁜 엄마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세진군을 강하게 잘 키우셨다는 얘기지요. 그런데 왜 스스로를 ‘부족한 엄마’라고 하시나요?
응답 :“저는 세진이한테 들어오는 후원을 거의 받지 않았어요. 세진이가 좀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있어서 후원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도우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말이죠. 무조건 거절할 게 아니라 받을 것, 안 받을 것을 구분해서 도움을 좀 받았더라면 세진이가 덜 고생하지 않았을까 후회될 때가 있어요. 그때 당시에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것만 생각했어요. 혹시라도 나중에 아이에게 문제가 될 까봐요. 닦아서 빛나지 않은 사람은 없는데 말이죠. 또 제가 의족에 대한 지식이 너무 없어서 사기를 2번 당하는 바람에 아이를 너무 고생시켰어요. 그래서 ‘내가 의족에 대해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세진이가 그 고생 안하고 빨리 설 수 있었을 텐데. 똑똑한 엄마 만났으면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코치한테 맨날 맞고 피눈물 흘려가며 수영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고 항상 생각하죠. 저는 아직도 부족한 엄마예요.”
질의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갈등이 최근 큰 이슈입니다. 장애아동을 키우는 부모님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응답 :“기본은 앞서가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가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거예요. 장애인시설을 반대하는 어머니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무조건 반대하기보다는 서로 협상하고 합의점을 만들어내면 좋겠어요. 장애아동의 어머니들도 학교를 짓기 위해 무릎까지 꿇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반학교에서 장애아동을 위해 조금만 준비하고 학부모님들이 조금만 양보해주시면, 큰 돈 들여 학교를 짓지 않아도 되거든요. 때문에 우리 국민과 국가가 장애아동이 일반학교를 평범하게 다닐 수 있는 방법을 더 찾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강서구 특수학교와 같은 갈등이 있을 때에는 지자체와 교육기관, 그리고 전문가들이 개입해 중재해주셔야 합니다. 부디 아픈 아이를 양육한다는 죄로 무릎까지 꿇지는 마세요. 보는 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가끔 장애아동 키우는 어머니들 중 저를 미워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우리도 똑같이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왜 세진이만 잘 돼? 왜 저 여자만 대단한 사람이야?’하고 비교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오히려 본인보다도 남편과 시부모가 ‘저 여자 좀 봐라. 너는 내가 돈도 벌어주는데 왜 저렇게 못하냐’고 비교하며 상처를 줍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은 제가 나오는 방송을 일부러 안보세요. 참 안타까운 일이죠. 아픈 아이를 양육하는 어머니들의 항상 누가 심장을 쥐어서 짜는 듯한 답답함을 안고 살고 있어요. 누구도 풀어주지 못하는 그 심정은 아무도 위로해줄 수 없습니다. 아픈 아이를 양육하는 어머니들끼리 만나도 상처만 더할 뿐이죠. 그런데도 서로 비교하면서 ‘그래도 너는 우리보다 낫네’ 이런 식이에요. 잘난 아이, 못난 아이는 없어요. 손가락 하나가 없든 팔이 하나가 없든 그 자식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똑같아요. 감히 제가 그런 어머니들께 해드릴 수 있는 말은 그저 울지 말라는 말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울면 당신 아이가 더 울면서 살아요. 그러니 울지 마세요. 당신은 눈물을 흘려 보내는 거지만 그걸 보는 자식은 용기를 흘려 보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고개를 숙이는 것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머리를 숙이는 것이
용서받을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숙인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내가 옳았다면
고개 숙임을 받았던 그들이 미안 할 것이고
시간이 지나 그들이 옳았다면
내가 그때 머리 숙이기를 잘한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양정숙씨 페이스북 문구 中-

  
김세진(왼쪽)과 그의 어머니 양정숙씨. [사진 양정숙]

김세진(왼쪽)과 그의 어머니 양정숙씨. [사진 양정숙]

  
“특별하시네요.” “특이합니다.” 2시간의 인터뷰 동안 많이 하게 된 이야기이다. 양정숙씨와 대화하면서, ‘그 상황에서 나라면 과연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싶었다. 절박한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기지를 발휘하여 헤쳐낸 에피소드들에 대리만족을 넘어 쾌감을 느꼈다. 데일 것 같은 뜨거운 열정과, 지혜와, 강한 사랑으로 키워낸 가슴으로 낳은 아들, 세진이. 그간 겪었던 전쟁 같은 상황들을 얘기하며 양정숙씨는 '난 부족한 엄마입니다.'라고 말했다.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강철같고 꽃잎 같은 사람, 양정숙씨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 문득 '용기'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배양숙 (사)서울인문포럼 이사장 betterlife65@daum.net   
정리 = 장하니 인턴기자 chang.hany@joongang.co.kr